말레이 반도.


인도네시아어(및 말레이어, 통칭 마인어)에서 동서남북 방위를 나타내는 단어가 하나같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timur. 남도어족 계통의 고유어. 인도네시아 최동단에 있는 섬을 티모르(timor)섬이라고 하는데, 이 섬의 동부에 위치한 나라 이름이 바로 21세기 최초의 독립국인 동티모르(Timor Leste). 네덜란드 식민지배를 받은 인도네시아와 다르게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은 곳인데, leste는 포르투갈어로 동쪽을 뜻하는 este에서 왔다. 즉 '동쪽 섬의 동쪽'인 셈. 동동국(東東國)? 또 재미있는 사실은 같은 남도어족인 타갈로그어에서 timog는 남쪽이라는 뜻. 말레이 반도의 동쪽이 필리핀 군도에서는 남쪽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럴듯한 사실.


- selatan. 마찬가지로 고유어. 타갈로그어로 silangan은 동쪽이라는 뜻. timur-timog는 이해가는데, 말레이시아에서의 남쪽이 어떻게 필리핀에서 동쪽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약간 이해가 안 가기도 한다.


- barat. 전에도 얘기했지만 힌디어로 bhārat(भारत)은 '인도'라는 뜻. 범어를 통해서 마인어로 유입된 것인데, 인도가 말레이 반도 서쪽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인도라는 나라 자체가 서쪽을 뜻하는 방위개념으로 의미변화가 이루어진 듯 하다. 과거 중국 및 한국에서 인도를 '서역'이라고 불렀던 것과 비교해 보면 흥미롭다.


- utara. 범어로 uttara(उत्तरा)는 위(上)이라는 뜻. 불교에서 깨달음을 지칭하는 용어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가 있는데, ānuttarā samyaksambodhi(यानुत्तरा सम्यक्सम्बोधि)의 음역으로, 여기서 ānuttarā는 말은 '더 높을 수가 없는, 최상의' 라는 뜻. 북쪽을 '위'라고 인식한 것이 흥미롭다. 사실 우리도 북한을 '윗동네'라고 부른다거나 서울에 '올라간다'고 표현하는 듯, 북과 남이라는 방위개념을 위아래와 관련짓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지도가 보편화된 근대에나 생겨난 관습인지 아니면 전세계에 보편적으로 퍼진 개념인지는 모르겠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얘네들은 재미있게도 '동남' '서북' 등의 8방위까지 저마다의 이름이 있다.


북동, 북서 - timur laut, barat laut. Laut은 '바다'란 뜻인데 여기서는 북쪽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즉 '바다 방향 동쪽, 바다 방향 서쪽'인 셈이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어차피 반도 국가인데 사방이 바다 아닌가? 싶지만 말레이 반도의 지도를 보면 서-남쪽으로는 좁은 해협을 두고 수마트라 섬이 있고,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바다'가 대충 북쪽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싶다. 재밌게도, 필리핀 북부의 소수언어인 일로카노(Ilocano)어에서 laud은 서쪽이라는 뜻이다.


남서 - barat daya.  daya는 '땅쪽'이라는 뜻이다. 아무래도 남쪽에 수마트라 섬이라는 육지가 있으니까, 바다(인도양)으로 나가는 서쪽에 대비해서 '육지 방향의 서쪽'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조어인 것 같다.


동남 - tenggara. 이건 정말 미스테리한 단어이다. 8방위 단어 주제에 합성어가 아닌 개별 단어(인 것처럼 보인)다. 대체 어원이 무엇인지 찾아봐도 알 수 없다. 왜 유독 동남쪽만 특별한 단어인지는 알 수 없다. 여튼 그래서 '동남아'는 마인어로 'Asia Tenggara'다.


Posted by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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