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어로 쿠사치(кусать)는 '물다'는 뜻입니다. 저번에 말한 쿠샤치(кушать, 먹다)와 비슷하죠? 쿠스(кус)라고 하면 '조각'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영어와 불어에서도 이러한 연관이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면 영어의 바이트(bite)는 물다는 뜻인데, 비트(bit)라고 하면 '조각, 조금'이라는 뜻이죠. 불어의 모르드르(mordre)는 물다이고, 모르소(morceau)는 조각입니다.

쿠사치의 어원을 거슬러올라가면 인구어 어근 *kǝnod-가 있습니다. 이것과 연관된 고대 그리스어는 크노돈(κνώδων)이구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크노돈은 이빨이라는 뜻이 아니라 '칼' 혹은 '칼날'이라는 뜻입니다. 

Posted by 역자
,

마인어(말레이-인도네시아어)에 바하기(bahagi)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나누다, 베풀다'는 뜻이죠. 범어 바가(भग bhága)에서 왔는데요, 바가에는 물론 나눈다는 뜻도 있습니다만 '행복', '부'의 뜻도 있고 나아가 신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불교에서 부처를 흔히 세존(世尊)이라 칭하지 않습니까? 이 세존의 범어가 바가완(भगवान्bhagavān), 즉 바가를 가진 이(वान् vān)라는 의미입니다. 

나눈다는 것과 부, 또 신과는 무슨 관련일까요? 이 단어의 원시인구어 어근 *bhag-은 나눈다는 뜻으로, 아마 분배의 의미가 먼저였던 듯 합니다. 아마 '무언가를 분배하는 자' -> '분배(권)을 소유한 자' -> 위대한 사람 -> 신, 뭐 이런 식의 의미확장이 아닌가 합니다. 

범어와 같은 인도이란어족에 속하고 현대 페르시아어(이란어)의 전신인 아베스타어를 보면 이 문제는 더 확실해집니다. 아베스타어의 baɣa-는 '부분, 몫'이라는 뜻인데 '신'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인도어와 이란어는 과거에 동일한 문화권과 종교에 속했으니, 그 문화에서는 무언가를 분배할 권한을 지닌 이가 위대한 자로 추종되었던 것일까 하고 추측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개념은 영어의 로드(lord, 主)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로드는 고대영어 hlāfweard에서 왔는데요, 이는 '빵을 관리하는 이'라는 뜻입니다. 즉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빵(나아가 음식)을 분배하는 이의 이름이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쓰였다는 것이죠.

어쨌든 아베스타어의 baɣa-는 여러 방면에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단 노어가 페르시아어에서 이런저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단적인 예로 노어로 신을 뜻하는 단어가 보그(бог)입니다. 두말할 것 없이 페르시아어에서 온 것이죠. 또한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بغداد‎)도 페르시아어로 '신(بغ)이 주었다(داد)'는 페르시아어에서 따온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Posted by 역자
,

14회에서는 원시인구어 어근 *geus-의 '맛보다'와 '시도하다'의 이중성에 대해서 얘기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인구어 어근 *sep-의 비슷한 의미론적 이중성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합니다. 이 어근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1. 맛보다

2. 인식하다

영어로 맛은 테이스트(taste)지만 세이버(savor)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세이버리(savory)라고 하면 맛있는, 짭짤한 등의 의미죠. 이는 프랑스어 사뵈르(saveur, 맛)에서 온 것으로, 라틴어 사페레(sapere)에서 온 것입니다.

그런데 sapere는 원래 맛보다는 뜻이었지만 후기 라틴어로 가면 '알다'는 뜻도 지니게 됩니다. 사뵈르 외에 불단어 사부아르(savoir, 알다, 할 수 있다)나 이탈리아어 사페레(sapere) 등 역시 이 단어에서 온 것이죠.

로망스어에 익숙하지 않은 분이라도 이 라틴어를 어디선가 분명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인류의 학명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입니다. sapiens는 sapere의 현재분사로, 아시다시피 '현명하다'의 뜻이죠.

인구어에서 '맛보다'가 '알다'나 '인식하다', '현명하다'의 뜻과 이렇게 광범위하게 연관되는 게 참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음식을 제대로 맛볼 줄 아는 것이 무언가를 아는 방식이었던 것일까요. 

Posted by 역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