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스터스 초이스, '맛보는 이의 선택'


원시인도유럽어 어근은 *geus-에는 크게 세 갈래의 뜻이 있습니다.


1. 맛보다

2. 시도하다

3. 즐기다


전혀 관계없는 의미로 보이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서로 연관있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왜, 한국어에서도 '맛보기'라는 단어를 '시험해보기'라는 의미로도 쓰지 않습니까? 반대로, 영어의 트라이(try, 시도하다)에도 '맛보다'는 의미가 있구요. 그런 개념의 혼재가 아닐가 합니다. 

인도유럽어족의 파생언어는 대체로 이 세 의미 중 일부를 선택하여 발전시킨 듯 합니다. 꽤나 흥미로운 주제이기에 이러한 의미론적 변화 역사를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1. 게르만어 - kausjan(고트어)

고트어라는 게르만어의 일파가 있습니다. 한때는 유럽 전역에서 쓰이다 6세기에 고트족이 프랑크족에 패하면서 점점 기울어가더니 8, 9세기경에 사멸했지요. 기록으로 남아있는 게르만어 중에서는 가장 오래되었으면서도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멸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유럽 여기저기 퍼져있던 고트족이라 그런지 다른 게르만어 뿐만이 아닌 로망스어, 슬라브어계통 언어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러시아어로 '먹다'는 쿠샤치(кушать)입니다. 이 단어는 고트어에서 온 것으로, 고트어 kausjan은 '시도해보다, 맛보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트어 단어는 불어의 슈아지르(choisir, 선택하다)로도 변화되었습니다. 이 슈아지르 내지는 슈아(choix)에서 영어의 '선택하다'의 뜻인 추즈(choose)와 '선택'의 초이스(choice)가 되었구요.

즉 '시도해보다/맛보다'의 중의적인 의미의 단어가, 노어에서는 전자의 의미를 중심으로 발달하였고, 불어에서는 후자의 의미를 중심으로 발달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고트어 외에도 다른 게르만어에도 이 계통의 단어가 있습니다. 독일어 코스튼(kosten, 맛보다) 등이 그 예지요.


2. 로망스어 - gustus(라틴어)

이 어근에서 또한 라틴어 구스투스(gustus, 맛보기)라는 단어가 나오고, 여기에서 로망스어로 '맛'을 뜻하는 단어가 파생됩니다. 이탈리아어 구스토(gusto), 불어 구(goût) 등이 있지요. 스페인어로 구스타(gustar)하면 '마음에 들다'라는 뜻의 동사지요. '미 구스타(mi gusta)'는 '마음에 들어, 좋아'라는 뜻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한국 도시 '대구'의 이름을 들으면 실소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불어로 '역겨움, 질림, 짜증남'을 의미하는 데구(dégoût)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지요. '구'에 부정형인 데(dé-)가 붙은 것인데요, 이 단어는 영어로 건너가서 혐오, 징그러움을 의미하는 디스거스트(disgust)가 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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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뜻하는 그리스어 코스모스(κόσμος)는 한번쯤 들여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형수술의 영어명은 코스메틱 서저리(cosmetic surgery)지요. 코스모스와 코스메틱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우주와 성형수술의 관계는 무엇일까?

사실 코스모스의 원뜻은 '질서'입니다. 피타고라스가 처음으로 이 단어를 '우주'의 의미로 사용했다고 전해져오는데요, 우주를 일종의 (수학적) 질서로 본 피타고라스의 우주관이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죠.

그런데 질서가 있는 것은 이 우주뿐만이 아닙니다. 무언가를 아름답게 하려면 질서정연하게 정리하고 꾸며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코스모스는 여성의 미용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습니다. '코스메틱 서저리'는 사람의 혼돈스러운(?) 얼굴에 질서(?)를 가져다주는 수술인 것일까요?

그렇다면 질서의 반대말, 혼돈의 그리스어는 무엇일까요? 카오스(χάος)입니다. 어감이 멋지기도 해서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도 여기저기 써먹는 단어죠. 그런데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늘상 사용하고 있는, 카오스의 사촌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가스'(gas)입니다.


Halitum illud gas vocavi, non longe a Chao veterum.

옛사람들의 '카오스'에 가까운 이 연기를 나는 '가스'라고 불렀다.


이산화탄소를 발견한 네덜란드 화학자 얀밥티스트 판 헬몬트(Jan-Baptiste van Helmont, 1577-1644)의 말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질서정연한 '코스모스'와는 반대되는 혼돈을 '연기'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고, 판 헬몬트도 그런 것을 연상한 것이 아닐까요. 게다가 사실 '카오스'는 영어식 발음이고, 그리스어로는 '하오스' 비슷한 발음이 납니다. 그런데 네덜란드어의 g도 비슷한 발음이 난단 말이지요. 네덜란드인 축구감독 거스 히딩크의 Guss도 사실 '후스' 비슷하게 읽는다는 것은 아시겠지요. 그래서 이 사람도 g자를 쓰지 않았나 합니다. 물론 영어/불어를 통해 들여온 우리는 '가스'라고 부르고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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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어로 토마토는 뭘까요? tomato? 포모도로(pomodoro)라고 합니다. 풀어쓰면 pomo d'oro인데요, pomo는 멜라(mela)와 마찬가지로 '사과'라는 뜻이고, 오로(oro)는 황금의 뜻입니다. 즉 토마토는 '황금사과'인 것이지요.

저번에 오렌지를 '중국 사과'라고 이름붙인 네덜란드인들이나, 토마토를 '포르투갈 감'이라 부른 한국인들의 기상천외한 센스에 대해서 다루어봤는데, 토마토를 '황금사과'라고 부른 이탈리아인들의 센스는 못 뛰어넘을 것 같습니다. 덜 익은 토마토의 불그스름한 노란빛을 보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금빛 사과라도 상상했던 것일까요?

한편 석류는 영어로 폼그레네이트(pomegranate)라고 하지요. 중세 라틴어로는 포뭄 그라나툼(pomum granatum)였는데, 포뭄은 아시겠지만 사과라는 뜻이고, 그라나툼은 '씨 많은' 혹은 '검붉은' 뜻이라고 합니다. 즉 석류는 '씨 많은 사과'라는 것입니다.

정작 프랑스에서는 '폼'은 쏙 빼먹고 그르나드(grenade)라고 석류를 부르고 있습니다. 한편 수류탄이라는 무기가 등장하면서 프랑스에서 누구인지는 몰라도 이걸 보고 석류와 비슷하게 생겨먹었다고 생각을 한 듯 합니다. 그래서 수류탄을 '석류'라고 불렀지요. '전방 석류!'인 겁니다. 그게 또 영어권으로 전해지면서 그레네이드(grenade)가 되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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