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라(मकर)의 입에서 솟아나오는 나가(नाग) 떼를 표현한 태국의 조각상. 주제는 인도 신화인데 마카라는 중국풍 용으로 표현된 게 흥미롭죠.

뱀과 달팽이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보기에는 전혀 연관점이 없을 것 같은 동물들이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둘 다 발 없이 기어다닌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네 발로 성큼성큼 걸어다니는 동물들과 달리 움직이는 것도 왠지 소리없이 스스슥 스멀스멀, 뭔가 기분나쁜 데가 있죠.

이렇게 얌체같이 몰래몰래 기어들어오는 걸 영어로는 뭐라고 할까요? 스니크(sneak)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좋은 느낌은 아니기에 형용사인 스니키(sneaky)에는 얌체같은, 비열한 등의 뜻도 있죠. 운동화도 스니커즈(sneakers)라고 하지 않습니까? 뚜벅뚜벅 소리나는 구두와 달리 걸을 때 소리가 안 나기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스니크라는 단어 어딘가 낯익지 않나요? 모음만 조금 바꿔보면 스네이크(snake)가 됩니다. 사실 이 두 단어는 고대영어 snaca, 인도유럽어족 어근인 *(s)nēg-o-에서 온 것입니다. 고대인들이 뱀이 기어다니는 걸 보고 '저 기어다니는 놈'하고 이름을 붙인 것일까요.

그런데 독일어 슈넥케(Schnecke)는 무슨 뜻이냐면 바로 달팽이를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척 보기에도 스네이크와 닮았지만 고대 고지 독일어 snecco에서 온 것으로, 고대영어 snaca와 가깝습니다. 

그런데 독일어로 민달팽이는 슈네겔(Schnegel)입니다. 영어로 달팽이는 스네일(Snail)인데 이건 고대영어 snægl에서 온 것이지요. snægl은 snaga의 지소사(指小詞)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소사가 뭐냐면 무언가에게 좀더 작은 느낌을 주기 위해 변형된 단어를 일컫습니다. dog를 doggy라고 부른다던가요. 즉 뱀은 '기어다니는 놈', 달팽이는 '작은 기어다니는 놈'이었던 것인지도 모르죠.

영어에서 snægl -> snail처럼 -ægl이 -ail로 변하는 예는 nægl -> nail(못, 손발톱)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독일어는 이러한 음운변화를 겪지 않은 것인지, 못/손발톱은 나겔(Nagel)이죠. 원래 발톱, 발굽 등을 뜻하는 인구어 어근 *onughos에서 온 것인데 범어(산스크리트어)로 손발톱이 나카(nhaka नख)입니다. 흥미롭게도 러시아어에서 발, 다리를 뜻하는 단어가 나가(нога)인데요, '발톱'의 뜻에서 발, 다리로 의미가 환유된 셈입니다.

뱀 얘기로 돌아와서, *(s)nēg-o-는 범어에서도 존재하고 있는데요, 나가(nāga नाग)가 뱀이라는 뜻입니다. 인도신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뱀신 '나가'의 이름이 익숙하실 텐데요 사실 뱀신이라고 해도 이름은 그냥 '뱀'일 뿐입니다. 뱀들의 왕 나가라자(nāgaraja नागराजा)가 한역된 것이 바로 용왕(龍王)입니다. raja는 왕이라는 뜻이고, 영어의 통치(reign), 왕족의(royal) 등에서 비슷한 단어를 찾아볼 수 있죠. 또 불교의 용수(龍樹 )의 범어명 역시 나가라주나(nāgārajuna नागार्जुन)입니다.

그런데 코브라속(屬)의 학명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나자(naja)입니다. 이것은 포르투갈어로 '코브라'를 뜻합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인도에 가서 인도 특유의 코브라를 보고 인도 사람들이 뱀을 부르는 일반명사 '나가'를, 코브라를 뜻하는 명사로 받아들여와 '나자'로 변한 것이죠. 그런데 웃긴 것은 코브라(cobra)역시 포르투갈어이고 그냥 '뱀'을 뜻합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코브라 데 카펠루(cobra de capello), 즉 두건 쓴 뱀이라고 부른 것을(코브라의 목덜미가 두건처럼 생겼으니까) 영국인들을 비롯한 다른 유럽 사람들이 뒤는 쏙 빼먹고 앞의 '코브라'만 들여와서 인도 뱀을 부르는 명칭으로 써먹은 것입니다. 일반명사의 외래어가 들어오면서 의미가 축소, 제한되는 전형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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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퍼스트 레이디'로 불린 미국의 돌리 매디슨(Dolley Madison)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 우리말로는 영부인(令夫人)이라고도 하지요. (정확히는 영부인은 남의 부인에 대한 존칭입니다만 요즘에는 거의 대통령의 부인의 호칭으로 통일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퍼스트 레이디라는 말이 처음 쓰인 건 1849년 미국에서입니다. 대통령이라는 직위가 처음 생긴 것도 미국이니 이상한 일이 아니지요.

영단어 프린스(prince)는 왕자 혹은 군주를 의미합니다. 불어 프랭스(prince)에서, 나아가 라틴어 프린켑스(princeps)에서 온 것이지요. 이 프린켑스를 뜯어보자면 라틴어로 처음을 뜻하는 프리무스(primus)와, 잡다를 뜻하는 카페레(capere)의 합성입니다. 즉 '처음으로 잡는 자' 비스므레한 느낌이겠죠.

이 '프리무스'는 라틴어의 후예인 로망스어군에서 여전히 쓰이고 있습니다. 일단 불어로는 '프르미에'(premier)입니다. 캐나다 퀘벡 작곡가 앙드레 가뇽의 <첫날처럼>(Comme Au Premier Jour)은 유명한 곡이지요. 그런데 불단어는 멋지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들여온 영국 사람들답게 이 프르미에는 영어로 건너가 영어 발음으로 '프리미어'가 되어서 뭔가 고상한 느낌으로 써먹히고 있습니다. 일단 영화 초연도 '프리미어'라고 하고,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도 있고요. 하여간 이렇게 불어의 일상적인 어휘가 영어에서는 고급적인 느낌을 띠게 되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불어에서는 단순히 '크다'의 뜻인 그랑(grand)이 영어에서는 단순히 클 뿐만이 아니라 어딘가 거창한 느낌을 띠는 '그랜드'(grand)가 되는 것이지요. 불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간혹 들을 수 있는 불부심(?)입니다.

불어뿐만 아니라 다른 로망스어에서도 쓰이고 있습니다. 이태리어에서는 프리마(prima)라고 하지요. 오페라의 주역 여배우은 프리마돈나(Prima Donna), 즉 첫번째 여인(donna)입니다. 독일어에서도 라틴어에서 직접 따온 프리마(prima)라는 감탄사가 있습니다. prima! 하면 멋진데! 라는 뜻이지요.

물론 독일어도 라틴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긴 하지만 영어만큼은 아니라서 게르만계 어휘가 훨씬 더 많이 쓰입니다. 이런 독일어에서 후작을 일컫는 단어가 바로 퓌르스트(Fürst)입니다. 이것이 영단어 '퍼스트'와 관련있음은 말 안해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라틴어를 나름대로 번역한 것이지요. 그러나 현대 독어에서 '퓌르스트'라는 말에는 '처음'이란 뜻이 없고 대신 에르스트(erst)를 씁니다. 퓌르스트의 '후작'의 뜻이 '처음'의 뜻을 밀어낸 것일까요? 에르스트와 접점이 있는 영단어를 굳이 찾자면 '이른'을 뜻하는 얼리(early)가 있겠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최고급인 얼리에스트(earliest)가 되겠죠.

퍼스트 레이디라는 말 자체는 미국 12대 대통령인 재커리 테일러가 아내 매디슨의 장례식에서 처음 이용한 것이니 어원을 따지자면 그 양반 머릿속이겠지만 굳이 퍼스트라는 수식어를 쓴 것은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봐서 생각해봐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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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 선사(禪士) 하쿠인 에카쿠(白隠慧鶴)의 일원상(一円相)


Three, two, one, zero... 영어로 숫자를 세다보면 왠지 0을 나타내는 제로(zero)만 어딘가 형태가 좀 특별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사실 영어에서 -o로 끝나는 단어가 그다지 많지 않지요. 이것은 다른 숫자는 영어의 고유 게르만 어휘에 속하는 반면 zero는 17세기라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이탈리아어에서 들여왔기에 그런 것입니다. 이탈리아어의 남성명사는 거의 전부 다 -o 아니면 -e로 끝납니다. 젤라토(gelato), 카푸치노(cappucino), 에스프레소(espresso), 마니페스토(manifesto), 마니또(manito) 등등...
수학에는 젬병인 제가 수학 얘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서 좀 어색하군요. 어쨌든 영(0)이라는 숫자는 인도에서 발생해 유럽으로 건너온 것이라는 것은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정확히는 아랍문화를 거쳐서 들어왔지요. 13세기에 레오나르도 리보나치(Lenoardo Fibonacci)가 쓴 Liber Abaci에 0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Novem figure indorum he sunt 987654321. Cum his itaque novem figuris, et cum hoc signo 0 quod arabice zephirum appelatur.
아홉 가지의 인도 문자는 다음과 같다: 987654321. 그리고 이 아홉 문자에 더해, 아랍인들이 제피룸(zephirum)라고 부르는 0이라는 기호도 있다.
발번역입니다. 죄송.

0이라는 기호를 지칭할 자국어가 딱히 없었기에 '아랍애들은 이렇게 부른다더라'고 한 것이죠.
기원이 되는 산스크리트어는 슌야(शून्य)입니다. 지금도 힌디어에서는 0을 슌야라고 합니다. 참고로 불교에서 공(空)이라고 하는 개념이 이것의 명사형 슌야타(शून्यता)의 번역입니다. (라틴어의 -tas, 독일어의 -teit, 영어의 -ty와 비슷한 명사형 어미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아랍인들이 받아들이면서 비슷한 개념인 시프르(صفر)로 번역했고 이것이 이탈리아에서 라틴어로 옮겨지면서 zefirum이 되고, 라틴어에서 이탈리아어화되면서 체피로(zefiro), 나아가 체로(zero)가 된 듯합니다. 흥미롭게도, 이슬람권인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에서도 말레이어로 0을 시파르(sifar)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불어에서도 0은 zéro라고 하지요. 영어가 불어에서 엄청나게 많은 단어를 받아들였지만, 불어 역시 이태리어에서 만만치 않은 어휘와 문법요소를 수입해왔습니다. 불어가 현대영어의 선배라고 한다면, 이태리어는 선배의 선배, 대선배라고나 할까요. (물론 지금은 이 '선배'들이 '후배'한테 어마어마한 수의 어휘를 역수입하고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만...) 불어나 이태리어나 같은 라틴어의 후예입니다만, 라틴어가 분열된 후에도 서로 많은 단어를 주고받은 것입니다. 심지어 불어로 '번호'를 뜻하는 뉘메로(numero) 역시 이태리어에서 온 단어입니다. '수'(數)를 뜻하는 농브르(nombre)가 멀쩡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즉 영어에서는 넘버(number)라고 부르는 것을 불어에서는 1번, 2번 할때는 뉘메로, 하나 둘 셋 할 때는 농브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사람들만 아랍문화를 접했을 리가 없겠죠. 사실 15세기경 이탈리아를 경유해 들어온 zéro 말고도, 시프르라는 단어는 13세기에 프랑스에 이미 들어왔습니다. 이것이 라틴어로 시프라(cifra)라고 쓰여졌습니다. 사실, 유럽 공통으로 쓰였던 라틴어라고 해도, 그 발음은 언어권에 따라 매우 달랐기에, 이렇게 같은 라틴 자모로 옮기는 데에 있어서도 프랑스와 이탈리아 간의 차이가 있엇던 듯 합니다. 이 시프라는 처음에는 제로와 마찬가지로 0이라는 뜻이었습니다만, 0이라는 기호와 동시에 '아랍 숫자'(정확히는 인도 숫자)도 함께 들어왔던 것이었고, 점차 시프라는 그 의미가 확장되어 '아랍 숫자' 그 자체를 의미하게 되고, 나중에 가면 '숫자' 를 뜻하게 됩니다. 그만큼 0의 개념, 나아가 아랍 숫자 체계가 혁명적이었다는 것이겠죠. 이것이 현대 불어의 시프르(chiffre)입니다. 이렇게 의미가 확장되는 것을 언어학에서는 환유(換喩)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시프르가 14세기에 불어에서 영어로 전래되면서 사이퍼(cipher)가 됩니다. 즉 영어는 똑같은 아랍 단어를 불어와 이태리어한테서 받아들인 셈입니다. 사이퍼는 지금도 '숫자'를 의미하기도 합니다만 '암호'라는 뜻도 있습니다. 디사이퍼(decipher)라고 하면 '해독하다'의 뜻입니다. 숫자와 암호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이것은 과거, 문서를 암호화하는 전형적인 수법이 문자를 숫자화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말했다시피 슌야타는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공(空)이라고 한역됩니다. 한 문명에서 파생한 개념이 서방에서는 수학적, 동방에서는 철학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참 흥미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전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럼 영(零)은 무엇일까? 인도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본디 0이라는 수적 개념이 있었던 것인가?
零이라는 글자를 뜯어보면 비 우(雨)와 하여금 영(令)으로, 딱히 어느 쪽도 숫자 0과 관련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사실 零은 원래 빗물이 똑똑 떨어지는 것을 의미했던 듯 합니다. 이 의미가 추상화되면서 '조금'이라는 뜻이 생겼죠. 왜, 작고 변변치 못하다는 뜻의 영세(零細)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영세 기업, 영세민 같이요. 이 단어에는 영의 '작다'는 의미가 살아있는 것으로, 즉 '작고 가늘다'는 것이 되겠죠.
그래서 零의 0이라는 뜻은 어디까지나 중국이 유럽수학과 접촉하면서 생긴 현대적인 의미인 것입니다. 언뜻 보면 '빗방울'이나 '작다'는 뜻과 '없다'는 뜻이 잘 연관이 되지 않습니다만, 빗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것을 상상해보자면, 처마에서 아주 적은 양으로 떨어지다가 곧 없어지고, 그 뒤에는 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이 되니까요. 뭐 이런 '0으로 수렴한다'는 느낌에서 0이라는 의미로 전의(轉意)가 되었다고 상상할 수밖에 없네요. 어떻게 생각해 보면 그냥 '공(空)'으로 역하는 것이 역사적인 면에서는 더 어울리는 번역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실, 다른 한자권에서는 그러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0을 '공'이라고 읽는 일이 종종 있지 않습니까? 공공칠(007)같이요. 이 공이 그 空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오히려 더 어울리는 역어를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응?)

Posted by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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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1.24 0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shaind 2013.01.11 1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이 零 이라고 쓰는 데서, 令은 뜻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그냥 음을 따온 것이죠. (가차)

    한자가 표의문자라고는 하지만 사실 의미가 바로 문자로 기호화된 것이 아니고 한자 역시 중국어라는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인 만큼, 한자의 만들어짐 역시 음을 위주로 만들어졌죠. 그래서 같은 음(상고음이겠죠)을 가진 가차로 된 한자는 대개 공통된 부분이 있고, 여기에 서로 다른 의미를 구분하기 위해 부수를 붙인 겁니다. '맑다'는 뜻의 '청'이라는 말을 쓰기 위해 같은 음의 靑을 쓰고 거기에 부수를 붙여서(淸) 의미를 구분한다는 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