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발리섬의 아르주나상

아르주나(अर्जुन)는 힌두교의 산스크리트어 서사시인 <마하바라타 महाभारत>에 나오는 영웅이죠. 일본 애니 <지구소녀 아르쥬나 地球少女アルジュナ>로 들어보신 분들도 계실 듯 합니다.
참고로 <마하바라타>는 마하 + 바라타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서 '마하'라는 건 '大'라는 의미입니다. 라틴어의 '마그누스(Magnus)'생각하시면 됩니다. '마그나 카르타 Magna carta'라던가요. '바라타'는 '인도'란 뜻입니다. 사실 인도 사람들은, 남부의 드라비다족을 제외하면, 인도유럽어족 게열의 언어권에서는 대부분 자기 나라를 인디아라고 안 부르고 바라트Bharat라고 부르죠. 흥미롭게도, 인도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말레이시아어-인도네시아어(보통 합쳐서 마인어라고 부릅니다)에서는 바라트(Barat)가 '서쪽'이라는 뜻입니다. 이유는 당연히 인도가 얘네들 기준으로 서쪽에 있으니까.
'마하트마' 간디의 마하트마가 마하 + 아트마, 즉 '대혼(大魂)'입니다. 아트마(आत्म‍)라는 건 혼을 뜻하기도 하지만 '바람' 내지는 '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실은 후자의 의미가 먼저겠죠.) 독일어 아템(Atem) 역시 '숨'이라는 뜻입니다.
'숨'과 '혼'을 연결짓는 것은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퍼진 코드일지도 모릅니다. 신이 사람을 빚어 '숨'을 불어넣어 '혼'을 주었다는 헤브라이 신화처럼요. 산스크리트어와는 전혀 관계없는, 셈어 계통인 히브리어에서도 루아(רוח)도 마찬가지로 '숨'과 '혼'이라는 중의적인 뜻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이 구약성경을 번역할 때 그리스어를 거쳐 라틴어 스피리투스(spiritus)로 옮겨지는 계기가 되었고, 라틴어의 후예인 불어의 에스프리(esprit)를 지나 영어의 스피릿(spirit)이 되었습니다.
한편 '스피리투스'가 '숨'의 뜻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데, 같은 단어에서 아스피레(aspirer)라는 불단어 역시 갈라져나왔습니다. 아스피레는 '숨쉬다'와 '갈망하다'의 두 뜻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갈망할 때, 무언가를 향해 노력할 때 숨이 턱턱 차는 그런 느낌의 유추에서 '갈망하다'의 뜻이 갈라져 나왔으리라 상상해봅니다. 이것이 영단어 어스파이어(aspire)가 되었습니다만, 어스파이어에는 '숨쉬다'의 뜻은 쏙 빠지고 '갈망하다' '추구하다'만 남았죠. (한편 어스피레이션(aspiration) 같은 '호흡'에 연관된 파생단어도 있긴 합니다).
한국의 성경 초기 번역 중에는 '성령'을 '숨님'이라 번역한 경우도 있다고 한데, 이것이 히브리어 내지는 희랍/라틴어에 대한 어원적 고려 하에 택한 번역인지, 아니면 한국에도 원래 '숨=혼'이라는 신화적 공식이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실로 적절한 번역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얘기가 좀 샜군요. 어원 이야기의 특성상 이야기가 새는 것은 필연적이니 양해해 주시길 바래요.
우리의 아르주나로 돌아와 봅시다. 얘가 뭐하는 애인지에 대한 얘기는 제쳐두고, '아르주나' 자체는 '빛나는', '하얀', '은(銀)'의 뜻의 단어라고 합니다. 사실 고대신화에는 이렇게 일반명사가 신들을 지칭하는 고유명사 역할을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건 나중에 더 자세히 얘기해보도록 하죠. 어쨌든 산스크리트어와 같은 인도유럽어족인 라틴어에도 동계어(同係語)가 있습니다만 그것은 '은'을 뜻하는 아르겐툼(argentum)입니다.
아르주나와 아르겐툼 둘 다 원시인도유럽어 어근 *h₂erǵ-에서 갈라져나온 것인데 이 어근은 '하얗다'는 뜻입니다. 하얗다고 은이냐? 원시인도유럽족에게는 그랬나 봅니다. 흑해 근처에 살았던 이 이름모를 원시부족한테 은이 그냥 하얗게 번쩍거리는 걸로 보이니 '저 허연 거'라고 불렀나 보죠.
비슷한 예로 영단어 골드(gold), 즉 황금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인구어(인도유럽어)어근 *ghel-에서 오는데, 이것은 '노랑, 초록'을 뜻하는 어근입니다. (한국어의 '푸른'이 '초록'을 의미하기도 하듯이 얘네들도 노랑과 초록을 그냥 한 색깔로 불렀나 보네요.) 여기에서 파생되는 또다른 영단어가 바로 옐로(yellow), 노랑입니다. 즉 원시인도유럽어를 썼던 부족에게 '하얀 건 은이요, 노란 건 금이로다'였던 거죠.
헌데 이게 제목에서 쓴 남미의 축구 잘하는 나라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16세기에 스페인 사람들과 포르투갈 사람들 사이에 '야 남미에 은산(銀山 Sierra de Plata)이 가득한 나라가 있다더라'라는 헛소문이 돌아서 다들 은을 찾아서 지금의 아르헨티나에 해당하는 곳으로 갔습니다만, 물론 전설처럼 딱히 은이 많지는 않았죠. 불어와 마찬가지로 라틴어의 후예인 스페인어입니다만 argentum이라는 단어는 그새 엿바꿔 먹고 plata라는 단어로 은을 부르고 있습니다. (불어에는 아르장(argent)이라는 단어가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이래뵈도 나라 이름인데 '은 많이 나는 동네' 따위로 부르면 폼이 안 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좀더 고상하게 라틴어 argentum의 여성형 형용사형인 argentina (나라 이름은 여성형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인도유럽어족에서 보편적으로 보이는 듯 합니다)를 써서, 그것을 스페인어식으로 읽은 것이 '아르헨티나'라는 이야기.

Posted by 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