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어(말레이-인도네시아어)가 얼마나 다양한 어원의 언어인지 나타내기 위해 흔히 드는 예가 '책'을 뜻하는 마인어 단어입니다. 똑같은 책인데 범어에서 온 푸스타카(पुस्तक pustaka), 아랍어에서 온 키탑(كتاب kitab), 네덜란드어에서 온 부쿠(buku)라는 3가지 단어가 있지요. 물론 세 단어 각자 어감이 다르구요.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이기도 했기에 특히 네덜란드어에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부쿠(buku)라고 하면 영어 북(book)을 콩글리시로 읽은 것 같지만 사실은 네덜란드어 부크(boek)에서 온 것입니다.

네덜란드어가 영향을 끼친 언어는 인니어뿐만이 아닙니다. 현대 벨기에가 불어/네덜란드어가 공용으로 쓰이는 국가인 것에서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네덜란드어와 불어는 항상 이웃 언어였고 이들이 서로 주고받은 영향은 의외로 큽니다.

네덜란드에는 지소사(指小詞)가 특히 많이 쓰입니다. 그러니까 부크에 접미사 -je를 붙여 boekje라고 하면 '작은 책'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게 꼭 크기가 작다는 의미가 아니더라도 뭔가 덜 중요한, '책 한 권 쯤'의 뜻이 되는 것이지요. 

중세 네덜란드어의 boek의 지소형은 boeckijn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불어로 건너가서 부캥(bouquin)이 되지요. 지금은 그냥 리브르(livre)와 차이없는 '책'이라는 뜻입니다만 옛날에는 '고서(古書)'라는 의미였나 봅니다. 네덜란드를 통해 희귀한 장서를 들여왔던 것일까요? 이와 연관된 부키니스트(bouquiniste)라는 '헌책상인'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가 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책은 우리의 생활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중요한 물건인데도, 의외로 많은 언어에서 책이라는 단어가 외래어인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어의 '책(冊)'만 하더라도 중국에서 왔으니까요. 일본어의 혼(本)도 뿌리 본(本)의 독음이고, 일의 근본, 기초라는 뜻에서 그 기초, 규범을 가르쳐주는 책이라는 뜻으로 변화된 것이니, 궁극적으로는 중국에서 온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책이라는 단어를 들여온 게 어찌보면 동아시아 언어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러시아어로 책은 크니가(книга)인데요, 어원은 불분명합니다. 고대 스칸디나비아어로 규범, 지식 등을 의미하는 kenning에서 온 것이라는 사람도 있고, 또 터키어 küin에서 온 것이라는 사람 있는데, 이 터키어 단어는 중국의 책 권(券)을 통해 온 것일수도 있다고 하네요. 현대 한어로는 '취앤'인데 상고발음은 '크니가'에 얼마나 가까웠는지 모르겠네요. 심지어는 券이 아니라 고전인 시경(詩經)의 발음의 변형이라는 설도 있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



Posted by 역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실수 2012.07.13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렵네요. 하지만 재미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러시아어를 비롯한 슬라브어에서, 독일어를 비롯한 게르만어에서 단어를 많이 빌려왔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서로 이웃동네 사람들이니까 당연할 수 밖에요. 그런데 얘네들이 서로를 부르는 명칭을 들어보면 그다지 사이가 좋지만은 않았나 봅니다.

일단 슬라브족(Slav族)라는 표현을 보고 영어로 노예를 뜻하는 슬레이브(slave)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궁금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슬레이브'가 '슬라브'에서 온 것입니다. 10세기의 신성로마제국의 독일계 왕 오토 1세와 그 후계자들이 슬라브족들과 전쟁을 벌여 그들을 노예로 팔아먹었기에, 슬라브족의 라틴어 이름인 sclavus가 노예를 뜻하는 명사로 온 유럽에 퍼진 것이죠. 영어 슬레이브 뿐만이 아니라 불어 에스클라브(esclave), 독어 스클라베(Sklave) 등등...

그런데 슬라브족도 만만치 않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영어로 저먼(German)이죠? 불어로는 알망(allemand)이고요. 정작 독일인들 자신은 도이치(Deutsch)라고 자칭하는데 말이죠. 저먼이야 '게르만'족의 영어식 발음이고, 알망은 게르만 부족 중 하나인 알레마니족의 이름이 독일인들 전체의 이름으로 굳어진 경우입니다.

그런데 러시아어에서는 녜메츠(немец)라고 부릅니다. 대부분의 슬라브어에서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건 어떤 특정한 부족 이름이 아니라 일종의 의성어입니다. 마치 말 제대로 못하는 벙어리나 아기가 네네메메거리는 소리에서 따온 것이죠. 즉 원래는 러시아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들을 총칭하는 표현이었는데 이게 독일인들의 이름으로 굳어진 경우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리스어를 못하는 이방인의 언어를 흉내내 '바르바로이'라고 부른 것이 '게르만인'의 호칭이 된 경우도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Posted by 역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Cave Canem (개조심)

카나리아는 그 모습이 고와서 애완용으로 기르기도 하는 새입니다. 아프리카 서쪽의 스페인령 Insula Canaria라고 하는 섬의 새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요, insula는 라틴어로 섬이라는 뜻이고, canaria는 카나리아... 라는 뜻이 아니라 '개(犬)의' 라는 뜻입니다. 그 섬에 사는 개들이 유독 덩치가 컸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지어줬다고 하네요. 즉 카나리아라는 이름은 어떻게 보면 '개새'가 되는 것이죠.

라틴어로 개를 뜻하는 canis는 꽤나 유명한 단어입니다. 일단 폼페이 유적의 유명한 개조심 글귀 cave canem(개 조심하시오)가 있지요. 영어로 캐나인(canine) 하면 개와 관련된 것을 뜻하기도 하고요. 

한여름인 지금 폭염에 시달리시는 분들도 많을 듯 한데요, 불어로 폭염은 카니퀼(canicule)입니다. 라틴어로 카니쿨라(canicula)라고 하면 작은 개를 의미하는데, 별 시리우스의 이칭이기도 합니다. 7월 24일부터 8월 24일까지는 시리우스가 태양과 같은 시기에 뜨고 지기 때문에 고대인들은 이 별과 폭염이 뭔가 관련있나보다 생각해서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지요. 한국에서 한창 더울 때면 개를 잡아먹는 것도 혹시 이것과 관련이 있을 지도...? 는 농담입니다.

Posted by 역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ss 2012.08.01 1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