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어를 비롯한 슬라브어에서, 독일어를 비롯한 게르만어에서 단어를 많이 빌려왔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서로 이웃동네 사람들이니까 당연할 수 밖에요. 그런데 얘네들이 서로를 부르는 명칭을 들어보면 그다지 사이가 좋지만은 않았나 봅니다.
일단 슬라브족(Slav族)라는 표현을 보고 영어로 노예를 뜻하는 슬레이브(slave)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궁금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슬레이브'가 '슬라브'에서 온 것입니다. 10세기의 신성로마제국의 독일계 왕 오토 1세와 그 후계자들이 슬라브족들과 전쟁을 벌여 그들을 노예로 팔아먹었기에, 슬라브족의 라틴어 이름인 sclavus가 노예를 뜻하는 명사로 온 유럽에 퍼진 것이죠. 영어 슬레이브 뿐만이 아니라 불어 에스클라브(esclave), 독어 스클라베(Sklave) 등등...
그런데 슬라브족도 만만치 않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영어로 저먼(German)이죠? 불어로는 알망(allemand)이고요. 정작 독일인들 자신은 도이치(Deutsch)라고 자칭하는데 말이죠. 저먼이야 '게르만'족의 영어식 발음이고, 알망은 게르만 부족 중 하나인 알레마니족의 이름이 독일인들 전체의 이름으로 굳어진 경우입니다.
그런데 러시아어에서는 녜메츠(немец)라고 부릅니다. 대부분의 슬라브어에서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건 어떤 특정한 부족 이름이 아니라 일종의 의성어입니다. 마치 말 제대로 못하는 벙어리나 아기가 네네메메거리는 소리에서 따온 것이죠. 즉 원래는 러시아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들을 총칭하는 표현이었는데 이게 독일인들의 이름으로 굳어진 경우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리스어를 못하는 이방인의 언어를 흉내내 '바르바로이'라고 부른 것이 '게르만인'의 호칭이 된 경우도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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