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에서는 원시인구어 어근 *geus-의 '맛보다'와 '시도하다'의 이중성에 대해서 얘기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인구어 어근 *sep-의 비슷한 의미론적 이중성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합니다. 이 어근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1. 맛보다
2. 인식하다
영어로 맛은 테이스트(taste)지만 세이버(savor)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세이버리(savory)라고 하면 맛있는, 짭짤한 등의 의미죠. 이는 프랑스어 사뵈르(saveur, 맛)에서 온 것으로, 라틴어 사페레(sapere)에서 온 것입니다.
그런데 sapere는 원래 맛보다는 뜻이었지만 후기 라틴어로 가면 '알다'는 뜻도 지니게 됩니다. 사뵈르 외에 불단어 사부아르(savoir, 알다, 할 수 있다)나 이탈리아어 사페레(sapere) 등 역시 이 단어에서 온 것이죠.
로망스어에 익숙하지 않은 분이라도 이 라틴어를 어디선가 분명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인류의 학명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입니다. sapiens는 sapere의 현재분사로, 아시다시피 '현명하다'의 뜻이죠.
인구어에서 '맛보다'가 '알다'나 '인식하다', '현명하다'의 뜻과 이렇게 광범위하게 연관되는 게 참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음식을 제대로 맛볼 줄 아는 것이 무언가를 아는 방식이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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