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스 크라나흐의 <타락 Sündenfall>. 사실 성경에 선악과가 사과란 말은 없습니다. 유럽인들에게 익숙한 과일이다보니 사과의 이미지가 생긴 것이겠지요.

영어로 복숭아는 피치(peach)라고 합니다. 어원을 거슬러올라가보면 라틴어의 페르시쿰 말룸(persicum malum), 즉 '페르시아 사과'가 되겠습니다. (사실 말룸(malum)은 사과뿐만 아니라 연한 과육에 단단한 핵의 모든 과일에 쓰일 수 있습니다.) 복숭아 자체는 중국이 원산이지만 페르시아를 거쳐서 들어왔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라틴어 학명도 prunus persica, 즉 페르시아 프룬(서양자두의 일종)입니다.

사과는 영어로 애플(apple)이지요. 영어와 친척 관계인 네덜란드어에서는 아플(appel)입니다. 발음도 매우 비슷해요.  그런데 오렌지는 네덜란드어로 뭐일까요? 네덜란드에서는 오렌지를 달라고 해도 어린쥐를 달라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오렌지는 시나스아플(sinaasappel), 즉 '중국 사과'이기 때문이지요. 우리야 오렌지를 '서양 귤'쯤으로 알고있지만 사실 이거, 중국이 원산이고 한자로는 등(橙)이라 씁니다.  중국에서 16세기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들여왔고, 라틴어 학명은 Citrus sinensis, 즉 '중국 레몬'입니다. 또 주황색과 비슷한 색인 등색(橙色)이 있고요. 등자나무라는 나무이름도 한번쯤 들어보셨을 듯한데 아무래도 여기서 열리는 등자는 맛이 시고 쓰다고 하니 우리가 아는 오렌지와는 살짝 다른 듯하네요. 참고로 한국의 걸그룹 <오렌지 카라멜>의 중화권 이름이 등자초당(橙子焦糖)이라고 합니다. 또 일본의 슈팅게임 동방프로젝트에 첸(橙)이라는 캐릭터가 있지요.

어쨌든 네덜란드인들이 이런 무역은 꽉 잡고 있었던지라 네덜란드식 이름도 꽤 퍼졌는데요, 지금 표준 네덜란드어로는 시나스아플이지만 옛날에는 아플신(appelsien)이라고 했습니다. 독일 북부에서는 지금도 압펠시네(Apfelsine)라고 부르는 곳이 있고요, 러시아까지 퍼져서 노어로는 아폘신(апельсин)입니다. 러시아 왕족들이 별미로 즐겼다고 하네요. 흥미롭게도 푸에르토리코의 스페인어로는 치나(china)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네덜란드가 아닌 포르투갈을 통해 접한 나라들도 있나 봅니다. 불가리아어에서는 오렌지를 포르토칼 (портокал)이라 하고, 그리스어로는 포르토칼리(πορτοκαλι), 페르시아어와 아랍어에서는 부르투칼(برتقال)이라 한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오렌지를 사과에 비교한 것을 보면 네덜란드 사람들의 미각을 의심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한국도 토마토를 남만시(南蠻枾), 즉 포르투갈 감으로 부른 걸 보면 우리도 남말할 처지가 아니겠죠.

헌데 네덜란드 사람들이 사과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오렌지뿐만이 아닙니다. 남미에서 들여온 감자는 아르다플(aardappel)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아르드(aarde)는 영어의 어스(earth)와 마찬가지로 흙, 땅을 뜻합니다. 즉 땅에서 나는 사과... 라는 것이죠. 마냥 황당한 작명으로만 볼 것이 아닌게, 실제로 코를 막고 감자를 날것으로 베어물면 사과와 거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독일의 일부 지방과 오스트리아, 스위스에서도 에르답펠(Erdapfel)이라고도 부릅니다. 불어도 여기에서 따와서 폼 드 테르(pomme de terre)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테르'는 라틴어 '테라'(terra)에서도 볼 수 있듯 땅이라는 뜻이죠. 

외래 과일에 이것저것 사과라는 이름을 붙인 걸 보면 사과가 유럽인들에게는 꽤나 대표적인 과실이었던가 봅니다. 성경의 선악과가 사과로 그려진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을지도요.

한편 동아시아의 '사과'는 어떨까요. 현대한국어에서 사과(沙果)라 하는 것은 범어의 가차자로, 원래는 사과의 일부 품종을 가리키는 것이었다고 하고,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는 원래 '능금'을 썼다고 합니다. 요즘은 한의학에서나 들을 수 있는 명칭인 '능금'이지만 원래는 임금(林檎)이었다고 합니다. 능금나무 금(檎)을 쓰지요. 중국 명대의 <본초강목>의 30권을 보면 이런 말이 있는데요

林檎一名来禽, 言味甘熟則来禽也。

임금일명래금, 언미감숙즉래금야.

임금이라는 이름은 새 금(禽)에서 왔으니, 그 맛이 달고 좋아 새가 찾아왔다 하였음이라.

즉 능금나무의 열매를 먹으러 禽(맹금, 가금 할 때 그 '금')이 많이 찾아와서 임금이라 붙였다는 말인데... 솔직히 민간어원 같습니다만 어쨌든 재미있는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능금'이란 말은 사장되어가고 있습니다만 일본에서는 '링고'라고 하지요. 요즘이야 대개 히라가나 아니면 가타가나로 쓰지만 어쨌거나 林檎의 독음이니 한국의 능금과 뿌리가 같음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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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라(मकर)의 입에서 솟아나오는 나가(नाग) 떼를 표현한 태국의 조각상. 주제는 인도 신화인데 마카라는 중국풍 용으로 표현된 게 흥미롭죠.

뱀과 달팽이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보기에는 전혀 연관점이 없을 것 같은 동물들이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둘 다 발 없이 기어다닌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네 발로 성큼성큼 걸어다니는 동물들과 달리 움직이는 것도 왠지 소리없이 스스슥 스멀스멀, 뭔가 기분나쁜 데가 있죠.

이렇게 얌체같이 몰래몰래 기어들어오는 걸 영어로는 뭐라고 할까요? 스니크(sneak)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좋은 느낌은 아니기에 형용사인 스니키(sneaky)에는 얌체같은, 비열한 등의 뜻도 있죠. 운동화도 스니커즈(sneakers)라고 하지 않습니까? 뚜벅뚜벅 소리나는 구두와 달리 걸을 때 소리가 안 나기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스니크라는 단어 어딘가 낯익지 않나요? 모음만 조금 바꿔보면 스네이크(snake)가 됩니다. 사실 이 두 단어는 고대영어 snaca, 인도유럽어족 어근인 *(s)nēg-o-에서 온 것입니다. 고대인들이 뱀이 기어다니는 걸 보고 '저 기어다니는 놈'하고 이름을 붙인 것일까요.

그런데 독일어 슈넥케(Schnecke)는 무슨 뜻이냐면 바로 달팽이를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척 보기에도 스네이크와 닮았지만 고대 고지 독일어 snecco에서 온 것으로, 고대영어 snaca와 가깝습니다. 

그런데 독일어로 민달팽이는 슈네겔(Schnegel)입니다. 영어로 달팽이는 스네일(Snail)인데 이건 고대영어 snægl에서 온 것이지요. snægl은 snaga의 지소사(指小詞)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소사가 뭐냐면 무언가에게 좀더 작은 느낌을 주기 위해 변형된 단어를 일컫습니다. dog를 doggy라고 부른다던가요. 즉 뱀은 '기어다니는 놈', 달팽이는 '작은 기어다니는 놈'이었던 것인지도 모르죠.

영어에서 snægl -> snail처럼 -ægl이 -ail로 변하는 예는 nægl -> nail(못, 손발톱)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독일어는 이러한 음운변화를 겪지 않은 것인지, 못/손발톱은 나겔(Nagel)이죠. 원래 발톱, 발굽 등을 뜻하는 인구어 어근 *onughos에서 온 것인데 범어(산스크리트어)로 손발톱이 나카(nhaka नख)입니다. 흥미롭게도 러시아어에서 발, 다리를 뜻하는 단어가 나가(нога)인데요, '발톱'의 뜻에서 발, 다리로 의미가 환유된 셈입니다.

뱀 얘기로 돌아와서, *(s)nēg-o-는 범어에서도 존재하고 있는데요, 나가(nāga नाग)가 뱀이라는 뜻입니다. 인도신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뱀신 '나가'의 이름이 익숙하실 텐데요 사실 뱀신이라고 해도 이름은 그냥 '뱀'일 뿐입니다. 뱀들의 왕 나가라자(nāgaraja नागराजा)가 한역된 것이 바로 용왕(龍王)입니다. raja는 왕이라는 뜻이고, 영어의 통치(reign), 왕족의(royal) 등에서 비슷한 단어를 찾아볼 수 있죠. 또 불교의 용수(龍樹 )의 범어명 역시 나가라주나(nāgārajuna नागार्जुन)입니다.

그런데 코브라속(屬)의 학명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나자(naja)입니다. 이것은 포르투갈어로 '코브라'를 뜻합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인도에 가서 인도 특유의 코브라를 보고 인도 사람들이 뱀을 부르는 일반명사 '나가'를, 코브라를 뜻하는 명사로 받아들여와 '나자'로 변한 것이죠. 그런데 웃긴 것은 코브라(cobra)역시 포르투갈어이고 그냥 '뱀'을 뜻합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코브라 데 카펠루(cobra de capello), 즉 두건 쓴 뱀이라고 부른 것을(코브라의 목덜미가 두건처럼 생겼으니까) 영국인들을 비롯한 다른 유럽 사람들이 뒤는 쏙 빼먹고 앞의 '코브라'만 들여와서 인도 뱀을 부르는 명칭으로 써먹은 것입니다. 일반명사의 외래어가 들어오면서 의미가 축소, 제한되는 전형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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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퍼스트 레이디'로 불린 미국의 돌리 매디슨(Dolley Madison)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 우리말로는 영부인(令夫人)이라고도 하지요. (정확히는 영부인은 남의 부인에 대한 존칭입니다만 요즘에는 거의 대통령의 부인의 호칭으로 통일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퍼스트 레이디라는 말이 처음 쓰인 건 1849년 미국에서입니다. 대통령이라는 직위가 처음 생긴 것도 미국이니 이상한 일이 아니지요.

영단어 프린스(prince)는 왕자 혹은 군주를 의미합니다. 불어 프랭스(prince)에서, 나아가 라틴어 프린켑스(princeps)에서 온 것이지요. 이 프린켑스를 뜯어보자면 라틴어로 처음을 뜻하는 프리무스(primus)와, 잡다를 뜻하는 카페레(capere)의 합성입니다. 즉 '처음으로 잡는 자' 비스므레한 느낌이겠죠.

이 '프리무스'는 라틴어의 후예인 로망스어군에서 여전히 쓰이고 있습니다. 일단 불어로는 '프르미에'(premier)입니다. 캐나다 퀘벡 작곡가 앙드레 가뇽의 <첫날처럼>(Comme Au Premier Jour)은 유명한 곡이지요. 그런데 불단어는 멋지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들여온 영국 사람들답게 이 프르미에는 영어로 건너가 영어 발음으로 '프리미어'가 되어서 뭔가 고상한 느낌으로 써먹히고 있습니다. 일단 영화 초연도 '프리미어'라고 하고,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도 있고요. 하여간 이렇게 불어의 일상적인 어휘가 영어에서는 고급적인 느낌을 띠게 되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불어에서는 단순히 '크다'의 뜻인 그랑(grand)이 영어에서는 단순히 클 뿐만이 아니라 어딘가 거창한 느낌을 띠는 '그랜드'(grand)가 되는 것이지요. 불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간혹 들을 수 있는 불부심(?)입니다.

불어뿐만 아니라 다른 로망스어에서도 쓰이고 있습니다. 이태리어에서는 프리마(prima)라고 하지요. 오페라의 주역 여배우은 프리마돈나(Prima Donna), 즉 첫번째 여인(donna)입니다. 독일어에서도 라틴어에서 직접 따온 프리마(prima)라는 감탄사가 있습니다. prima! 하면 멋진데! 라는 뜻이지요.

물론 독일어도 라틴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긴 하지만 영어만큼은 아니라서 게르만계 어휘가 훨씬 더 많이 쓰입니다. 이런 독일어에서 후작을 일컫는 단어가 바로 퓌르스트(Fürst)입니다. 이것이 영단어 '퍼스트'와 관련있음은 말 안해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라틴어를 나름대로 번역한 것이지요. 그러나 현대 독어에서 '퓌르스트'라는 말에는 '처음'이란 뜻이 없고 대신 에르스트(erst)를 씁니다. 퓌르스트의 '후작'의 뜻이 '처음'의 뜻을 밀어낸 것일까요? 에르스트와 접점이 있는 영단어를 굳이 찾자면 '이른'을 뜻하는 얼리(early)가 있겠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최고급인 얼리에스트(earliest)가 되겠죠.

퍼스트 레이디라는 말 자체는 미국 12대 대통령인 재커리 테일러가 아내 매디슨의 장례식에서 처음 이용한 것이니 어원을 따지자면 그 양반 머릿속이겠지만 굳이 퍼스트라는 수식어를 쓴 것은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봐서 생각해봐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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